밤 3시간 13분 수련.
집사람은 아이들 병원 투어를 마치고 뷔페를 가기로 했으나,
예약했던 뷔페가 문을 닫았는지 연락을 받지 않는다고 한다.
에슐ㄹ로 걸음을 옮겼으나, 여기도 대기가 33팀이나 있다.
와우~ 크리스마스라고 다들 외식하러 나온 모양이다.
나는 크리스마스든, 어쨌든, 무언가 챙겨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나,
집사람은 이런 대소사를 꼼꼼하게 잘 챙긴다.
역시 아이들이 엄마 찾는 데는 이유가 있다.
식사를 마치고 장을 본 뒤, 사고 난 후 찾아뵙지 못했던 부모님 댁에 가는 길.
하늘을 보니 솜털 구름이 가득히 펼쳐져 있고,
오후 햇빛에 반짝이며 구름 사이 사이마다 무지개가 서려있는 듯하다.
아이들에게 너무 이쁜 하늘 좀 보라고 했으나 관심이 없다.
어머님은 아직 통원치료를 받고 계신다.
교통사고 보험처리를 하는 메리ㅊ에서 문자가 왔는데,
무슨 이야기인지 모르겠다며 봐달라고 하신다.
27일까지 장애 등급 확인을 위한 진단서를 내지 않으면 지급을 종료하겠다는 이야기가 쓰여있다.
어머님께 진단서를 내시지 않았는지 확인했으나,
치료 기간이 적힌 진단서를 다시 내라는 말씀을 들으셨다고 한다.
그 순간 속에서 욱하는 감정이 치솟는 것을 감지한다.
어머니는 내가 어렸을 때부터 보험을 많이 들어두셨다.
보장이 되는지 않되는지 꼼꼼하게 따지며 드신 게 아니었는지,
만기 때는 대부분 내셨던 돈 보다 훨씬 작은 돈만 돌려받았다.
"엄마, 보험 설계사 아는 사람 없어요?
지금까지 그렇게 보험 많이 들어줬으면, 이 정도는 도와줄 만한 일 아니야?"
그제야 어머니는 아는 보험 설계사에게 전화를 하셨다.
보험 설계사는 '입원은 했는지, 일주일에 통원 치료는 3회 이상이었는지'를 따져 물었다.
그때 다시 속에서 천불이 일어나는 것을 느낀다.
어머님께 입원하시라고 몇 번을 권했고, 통원 치료도 제대로 챙겨 다니시길 권했으나
결국 일은 이렇게 흘러왔다.
이미 엎질러진 물.
내가 모시고 살았다면 진즉 챙겼을 일인데,
잘 지내고 계시겠거니 했던 내 불찰이다.
그래도 보험 설계사가 도와주겠다고 하는 말을 전화 사이로 건너들으니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래도 그 분이 도와주시려는 모양이니까 도움 잘 받으세요."
집으로 돌아오는 길, 기분이 엉망인 것을 느끼는 나를 바라보는 내가 있다.
어머니가 힘든 일 겪지 않으시길 바라는 마음으로 인해 기분이 엉망으로 될 수 있다니,
세상은 참 오묘하다. 아니면, 내 성격이 지랄 맞던지.
호흡 수련 시작.
벽쪽에 매트를 깔고, 빈백 소파를 놓아 이불을 덮고 앉는다.
자연스럽고 순하게 호흡하고자 하면서 단전을 바라본다.
단전 부위가 땡땡하다.
힘이 들어간 것인지, 자세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일단은 오가는 호흡을 바라본다.
조금 기다려보면서 순해지는 느낌이 들면, 더 집중을 해 볼 요량이다.
조금 기다렸으나 순해지는 느낌이 없다.
허리를 좀 더 세우는 자세로 다시 앉았다.
뱃속이 접히는 느낌이 들기에 허리를 살짝 틀면서 풀어본다.
그리고 호흡을 바라보며 조금 지나자, 순한 호흡으로 변해가는 것을 느낀다.
'일호에 집중, 일흡에 집중'을 떠올리며
한 모금 들이 쉼에 집중, 그 숨을 내뱉는 것에 집중한다.
그러면서 긴장을 서서히 놓는 것마저 느낀다.
그러자 오랫만에 꿈결 같은 느낌이 찾아왔다.
빈백 소파로는 처음 아닌가? 두 번째 인가? 모르겠다.
어쨌든 간만에 느끼는 느낌.
뱃속에서는 간간히 '쀽, 쀼익' 같은 소리가 난다.
하지만 왼쪽 옆구리는 소식이 없다.
소식이 없으면 어떤가, 무소식이 희소식이지.
좀 더 집중하자, 점점 호흡에 빨려들어가는 느낌이 든다.
'순하고 자연스러운 호흡이면 빨려들어가 보라고 하셨겠다!'
몰입하면서 빨려들어가 볼 요량이었으나,
조금 빨려들어가다 정체된 느낌이다.
아마도 강한 의식을 갖자 몰입이 깨진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몸은 자는 듯하고, 순한 호흡이 오가는 상태를 즐겨본다.
호흡이 순하고 자연스러워, 자는 듯이 크게 호흡을 해도 심장이 뛰지 않는다.
그래서 길게 호흡을 해 본다.
그때, 핸드폰의 진동이 울린다.
아마도 명명학교의 하얀 밤 결사를 알리는 메시지일 것이다.
'좋았어 간다!'
.
.
덥다.
어제 추웠다고 집사람에게 전했더니 보일러를 엄청나게 틀어둔 모양이다.
나를 구워먹으려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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