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일♡, 밤 1시간 24분 수련.
출근하니 모니터에 모기 한 마리가 앉아있다.
'미안하다 성불해라.'하고 보내려다가
굳이 지금 보낼 필요 있는가 싶어 손으로 휘휘 저었다.
나중에 부장님께서 "짝!" 합장을 하신다.
'이그... 살으라고 기회를 줬건만...'
오후.
장애 접수 전화를 받고 타 부서로 갔다.
손보고 있는 사이 후임 둘이 온다.
같은 장애 건으로 전화 받고 나간 뒤 둘이서 담배를 태운 모양이다.
몇 달전, 담배를 많이 태우는 신입 직원이 입사했다.
담배를 태우러 갈 때마다 한 사람 한 사람 데리고 나가서 담배를 태우는데
처음엔 적응하라고 두고 보고 있었다.
덕분에 나를 포함한 모두가 흡연량이 부쩍 많아졌다.
업무가 이어지는 도중에도
대기 시간이 길어지면 나가서 담배를 태우고 오는 신입.
좀 더 지켜보고 얘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으나, 오늘 일은 내 기준선을 넘었다.
사무실로 복귀해 업무 태도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아까 두 사람 장애 전화 받고 갔나?"
"네. 담배 좀 태우고 하려고 했어요."
오랫동안 같이 일한 직원이 뭐가 잘못되었냐는 투로 답한다.
성의 없는 답변 태도에
속에서 욱하고 분노가 치미는 걸 인지하지만, 이내 꾸역꾸역 억누른다.
"업무 먼저 마치고 담배 태웠으면 좋겠는데."
잠시 생각하니, 오랫동안 같이 일한 직원의 업무, 답변 태도는
짚고 넢어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랫동안 막내 사원 생활하느라 힘들어하는 걸 모르는 바가 아니기에
기준에 벗어나는 일이 생겨도 이해하고자 애쓰며 넘기고 있었다.
'업무 사춘기'
사춘기라고 생각하며 다시 제자리 찾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ㅇㅇ씨, 잠깐 얘기 좀 하자."
회의실로 가서 마주 앉는다.
"요즘도 일이 많아?"
말하는 중에도 화가 가슴 속에서 치고 올라오는 것을 느끼며 억누르느라
목소리가 살짝 떨린다.
"괜찮아요."
퉁명스러운 답변이 돌아온다.
"아까 답변은 왜 그렇냐."
"뭐가요? 업무하고 담배 태우라고 하니 알겠다고 했고,
얘기 들었으니 그렇게 하면 되는거 아니에요?"
내 속의 분노는 인간적인 모멸감으로 바뀐다.
"내가.. 내가 ㅇㅇ씨한테 보여준 태도가 그랬냐?"
"뭐가요?"
"내가 업무적인 태도를 그렇게 보여줬느냐고."
"과장님은 맨날 화만 내시잖아요."
말이 통하지 않는 것을 느낀다.
나와 생각하는 구조가 다르다는 것을 느낀다.
가슴속에서 뭔가 치솟으며 윗배에서 목구멍으로 비집고 빠져나가려고 한다.
상기가 되는 것 같다.
숨도 잘 안쉬어지려고 한다.
"알았다. 이제 업무 주는 일은 없을 거다."
나는 최고의 선배는 될 수 없겠지만,
그래도 내 선임께 배운 것을 받들어 후배 사원들을 잘 독려하고 싶었다.
최대한 애써가며 맞추고 있다고 생각했으나
이러한 일이 생기는 것을 보면, 나만의 착각이었던 것 같다.
내가 지금껏 해왔던 일과 행동이 올바른 것이 아니었을지 모른다는 의문이 생긴다.
<화려한 장미가 되기보단, 길가에 핀 들꽃이 되고 싶습니다.>
이 글은 쓴 사람은 화려한 장미가 되려는 사람보다 2배, 3배 더 고통스러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최소한만 남겨놓고 나머지 욕심은 내려놓았다는 뜻일 테니,
그 마저도 안되면 "내가 이렇게 까지 양보했는데! 이것도 안돼!? "하면서 더 괴로울 수 있다고.
'내 업보군...'
부장님께 내용을 고한다.
부장님께서는 이야기 한 번 해보겠다고 하신다.
멍하니 서서 단전을 바라보며 호흡을 하려 애써본다.
목구멍을 치고 올라오려는 그 무엇은 사리질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이젠 귀까지 뜨거워지는 것을 느낀다.
'이거 다스릴 수 없나...'
'그래, 내 기준이 남에게 맞지 않는 기준일 수도 있지..
그래도 아닌 건 아니지 않나?'
생각을 멈추려 한다.
마음이 시리다.
마음속으로 찬 바람이 들어와 시리다.
그래서 마음의 문을 닫는다.
마음의 문을 닫으니
그 대상은 사람이 아닌 사물로 보인다.
그러자 기분이 아무렇지 않아진다.
나는 돌을 보고 화내는 부류는 아니니까.
장자에서 본 것 같은 글.
<성격 더러운 어부가 그물질을 할 때, 빈 배가 흘러와 어부의 배에 부딪친다.
어부는 화내지 않는다.
그다음, 사람이 탄 배가 흘러오자, 어부는 "어이! 어이!" 하며 경계를 한다.
이내 배가 부딪치자 어부는 쌍욕을 퍼붓는다.>
제대로 기억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사람이 아닌 사물로 보이니, 사람이 탄 배가 마치 빈 배가 된 듯하다.
문득 나를 품었던 선임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새삼스럽게 다시 든다.
부장님이야 말할 나위가 있는가.
퇴근하니 집이 비어있다.
집사람은 첫 출근 했고, 아들내미는 학원에서 오지 않은 것 같고,
딸랑구는... 어디 갔지?
청소기로 청소하면서 생각해 보니
친구 생일잔치 간다며 설레어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아.. 놀러 갔구나.'
밥통을 보니 비어 있다.
그대로 두면, 집사람에게 들을 소리가 뻔하게 보인다.
밥을 안치고, 빨래를 갠다.
집사람은 힘들면 모든 것에 짜증을 잘 부리는 '프로 불편러'가 된다.
지금 이 상태로 집사람의 짜증을 받아줄 수 있을지 확신이 없으니 위험 요소를 모두 처리한다.
퇴근 한 집사람이 힘들었다며 대화의 물꼬를 튼다.
구태여 말하고 싶지 않지만, '나도 힘듦'이라고 이마에 써붙이기 위해
회사에서 있었던 일을 말한다.
"나는 그 직원 마음 이해가 가.
아직 감정도 안 좋은데 한 소리 들으니까 그런 거 아니겠어?"
객관적인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회사에서 있었던 일이 조금은 새롭게 보인다.
그래도 마음의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
뉘앙스가 어떻든 간에 업무 후 담배 태우라는 것은 해야 할 말이라고 생각한다.
회사에서 느꼈던, 목구멍으로 비집고 나오려는 그것이 다시금 느껴진다.
생각을 멈춘다.
호흡 수련 시작.
반가부좌로 앉아 고개를 살짝 숙여 단전을 바라보며 호흡을 시작한다.
호흡이 단전을 오간다.
단전은 열기가 점점 오르더니, 단전이 개통되었던 그때처럼 뜨겁다.
이내 잡념이 줄줄이 떠오르면서 의식이 사라진다.
정신이 드니 온몸에 땀과 열이 난다.
앉아서 잔 모양이다.
다시 단전을 바라보며 호흡을 하고자 하지만 수월치 않다.
잡념은 계속되고, 그때마다 의식이 사라진다.
호흡에 집중하는 것이 힘들다.
이내 배가 접히는 느낌이 드는 것을 보니 나도 모르게 힘이 들어가는 것 같다.
힘을 풀 요량으로 잠시 쉬며 시계를 보니 1시간 흘러 있었다.
그리고 힘이 풀린 것 같아 다시 호흡 수련을 시작한다.
처음엔 수월한 듯하다가 다시 배가 접히는 느낌이 든다.
오늘은 애를 그만 쓰고 싶어 수련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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