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 45분, 밤 2시간 23분, 총 3시간 8분 수련.
연차를 내고 쉬는 날.
예전 같으면 10시고 11시고 늘어지게 잤을 테지만
아들내미가 먼 곳의 중학교로 진학한 뒤로는 아들내미를 학교까지 태워주는 날이 되었다.
총각 때는 아들내미를 낳게 되면 강하게 키우기 위해서 정글로 보내버릴 생각까지 했거늘.
차를 타고 학교로 가는 길.
오마이걸의 컬러링북이라는 노래가 나온다.
나는 "내 손가락~"이라고 듣고, 아들내미는 "새끼 손가락~"이라고 들었단다.
가사를 검색해 보니 "열 손가락~"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집사람이 출근하며 톡으로 집안일 지시를 내린다.
청소, 빨래, 설거지 3종 세트.
'네. 네.'
엘리베이터를 타니 핸드폰이 하나 놓아져 있다.
방금 내린 사람의 핸드폰인 것 같아 쫓아갔지만, 그 사람 것이 아니라고 한다.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러 나오면서 경비실에 핸드폰을 맡겨두었다.
혹시 몰라서 종이에 글씨를 써붙여두었다.
"핸드폰 분실하신 분. 경비실에 맡김."
청소와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돌려놓은 뒤
호흡 수련을 위해 앉았다.
호흡 수련을 접한 지도 1년을 넘어섰건만
낮에 하는 호흡 수련은 오늘이 처음이다.
호흡 수련 시작.
매일 앉는 자리에 반가부좌로 앉고 활 쏘는 자세로 몸을 푼 뒤, 고개를 살짝 당겨 내린다.
단전을 바라보며 자연스럽고 순한 호흡을 하고자 한다.
눈이 부시다.
어두운 방에, 내가 앉은자리 바로 앞에 햇볕이 들어오고 있다.
하필이면 반개한 시선을 두는 딱 그 자리다.
그곳을 계속 바라보자니 손전등으로 눈을 쏘는 것 같다.
눈을 감으면 빛을 보고 감았을 때처럼 잔상이 남아, 더 신경 쓰인다.
'아이고, 낮에 호흡 수련하니, 이런 점도 있군...'
차라리 '내가 햇볕을 맞자'라고 생각하고 그 자리로 옮겨 앉는다.
이것도 아닌 것 같다.
그렇게 호흡하고 있는데 '면벽 수행'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벽을 바라보고 앉으니, 그나마 낫다.
그렇게 호흡하다 보니 어느새 꾸벅, 벌떡한다.
시계를 보니 45분 흘렀다.
책사 한 《천부경의 비밀과 백두산족 문화》를 다시금 읽어본다.
최대한 신경 쓰며 타자를 쳤건만, 전혀 생각도 못한 곳에서 오타가 보인다.
하루 종일 읽다 보니 어느덧 저녁이 되어 집사람이 퇴근했다.
목감기가 심해졌는지 목소리가 상당히 변했다.
갑작스럽게 날이 추워져 그런 모양이다.
냉장고에 남아 굴러다니는 돌배주를 반주 삼아 저녁을 먹고 설거지를 했다.
음식 쓰레기를 버리러 나와서 담배를 한 대 태우는데, 1년 전 퇴사한 후임 직원에게서 톡이 온다.
간단한 안부를 묻자, '옮긴 곳에는 마음을 의지할 만한 사람이 없다'라고 한다.
그래서 '자신에게 의지하는 법을 배워야 하는 것 아니겠냐'며 꼰대 멘트를 날렸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호흡 수련 시작.
반가부좌로 앉아, 활 쏘는 자세로 몸을 푼 뒤, 고개를 살짝 당긴다.
자연스럽고 순한 호흡을 하고자 마음먹으며 단전을 바라보는데,
또~ 호흡이 원활하지 않다.
먹은 저녁이 소화가 되지 않아서인가, 반주로 마신 술 때문인가.
앉은 자세가 잘못되어서 인가, 마음이 어지러워서 인가.
전부 다 인가?
단전에게 호흡 좀 받아달라고 구애하는 것 마냥 숨을 쉰다.
'아... 이러면 나가린데...'
부득부득 용을 써가며 집중하고자 애써본다.
잡념은 폭발하고, 호흡은 안 들어가고.
그래도 묵묵히 앉아서 호흡에 집중해 본다.
'일호일흡에 집중.'
안 된다.
집중이 흐트러진다.
잡념은 계속해서 폭발 중이다.
앞서 호흡 수련 때 얻은 요령을 떠올려보려고 애쓴다.
잡념이 더 폭발한다.
'와우...'
그냥 되는대로 호흡하자 마음먹고,
힘만 들어가지 않도록 애써본다.
어느덧, 눈 감김이 인지된다.
호흡에 집중하며 정신을 또렷하게 차리니
호흡은 단전을 원활하게 오가고 있었다.
조금 전, 단전에게 호흡을 받아달라며 구애하던 일이 일종의 시험처럼 느껴질 정도다.
잠시간 그 시간을 맛보는 데, 다리가 저리다.
휴식하고자 침대에 누워보지만,
물들어 올 때 노 저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잽싸게 다시 자리에 앉는다.
호흡 시작.
단전에게 호흡을 받아달라며 다시 구애 중이다.
'아.... 아~~~~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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