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시간 18분.
목디스크로 3차 대학병원에서 진료받기 위해 예약한 날.
일찍 일어나 병원으로 출발하는 바람에 아들내미를 태워주지 못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길이 막히지 않아서 아들내미 학교 근처에 금세 도착해 지나치고 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좀 기다렸다가 태워와서 내려줄 걸 그랬나…'
그런 생각으로 고속도로에 올라타 달리는 중,
윤하의 《크림 소스 파스타》가 흘러나오는데 음률과 가사가 귀에 콕 박혔다.
그렇지 않아도 어제, AI로 첫사랑 사진을 동영상으로 만들어보고
기껏 묻어놨던 옛 시간이 가슴 속 깊은 곳에서 풀려나와, 내 감정을 한 껏 끌어올려놓은 상태였는데
저런 노래까지 들으니, 컵에 가득 담겨 찰랑 찰랑 거리는 것만 같은 감정에 나를 주체할 수가 없다.
그러면서 그동안 살아온 시간이 마치, 이호승 시인의 《산산조각》에 나오는 부숴진 조각상인 것만 같았다.
그래도 옛날처럼 마냥 우울하지 않은 건, 인연이 오고 감과 갖지 못한 공허함을 인정하고 흘려보냈기 때문일 것이다.
3차 대학병원에서 진료받기는 거의 20여년 만이라, 접수부터 진료까지 한참 헤맨다.
간호사가 "2차 병원에서 받은 의뢰서와 영상CD는 없으시냐"라고 하기에 "없다"라고 했더니,
"2차 병원부터 거쳐와 와야하는데 왜 바로 왔느냐"며, "이번은 진료를 받으시라"라고 한다.
이게 윤석열이 했다는 그 의료개혁인가 하는 생각이 드니, 윤가에 대한 살의가 잠시간 느껴진다.
엑스레이를 찍고, 기다렸다가 교수의 진료를 받았다.
진료? 라기보단 문진에 가까웠는데, 그래도 엑스레이만 보고서도 "목디스크는 아니다"라고 했다.
6~7번 경추의 신경 통로에 뼈가 쓸데없이 자라나서 신경을 압박해서 생긴 통증이라는 거였다.
그리고 2~3번 경추도 마찬가지로 뼈가 쓸데없이 자라나 있다고 했다.
난생 처음 듣는 이야기에 정신이 바짝 차려지고 온 신경이 집중된다.
교수는 이어서, "왼쪽 팔로 무거운 것 들지 말고, 힘쓰는 일로 무리도 하지 말고,
잠은 푹 자고, 상체 운동은 절대 하지 말고, 만약 운동이 하고 싶으면 복근 운동이나 하라"라고 했다.
그러면서 "약을 한 달치 지어줄 테니 잘 듣는지 보고, 한 달 뒤에 다시 진료받을 때
약이 잘 듣는다면, 앞으로는 약 먹으면서 지내면 된다."라고 했다.
대책 없이 내뱉는 교수의 말에
'지금 이 얘기 들으려고 3월에 예약해서 지금껏 기다렸단 말이야?!' 하는 생각이 들자
대상을 특정할 수 없는 분노가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주사나, 시술이나, 수술 같은 방법은 없느냐"라고 물으니,
"약 먹고 지내면서 마비가 온다거나 하면 그때나 생각할 일"이라고 했다.
차 타고 돌아오면서 이런저런 생각에 머릿속이 복잡했다.
'지금이라도 2차 병원에 가서 정확히 진찰을 받아볼까?, 서울 쪽 3차 병원을 갈까?, 아주대병원이라도 가야 하나?'
'지금껏 정형외과에서 치료받고, 통증의학과와 재활의학과에서 주사 시술까지 받았는데도 효과가 없더라니,
디스크 염증이 아니고, 뼈가 자라서 그런 거였나?!'
목디스크가 더 잘못될 까봐 정좌를 하지 않았는데, 뼈가 그런 거라면 방법도 없으니
아파도 그냥 정좌해도 될 것 같아서 차라리 잘 됐는지도 모르겠다.
고장난 샤워기를 교체하고자 알아보는 중.
판넬 형이다 싶으면 20~50만 원, 그래도 쓸만 하겠다 싶은 건 15~20만 원.
출장비 따로, 설치비 따로, 추가 부품비 따로.
아… 진짜… 쫌…
.
.
.
하복부 열림, 유기 12초.
오랜만에 정좌하니 앉는 방법도 잊었나 보다.
제대로 다시 고쳐 앉아 호흡을 하니, 역시 누워서 하는 것과 다르다.
여리여리 가벼운 들숨, 적당히 미미한 날숨.
아랫배로 숨을 쉬는 듯하면서 쌓이는 느낌.
'그래… 이거였지.'
그러면서 호흡에 몰입하는 것을 인지했다. 참 간만이다.
목과 어깨에는 뻐근함이 쌓여가고, 왼팔은 찢어질 것 같은 아픔이 겹친다.
30분을 앉아있으니, 팔딱팔딱 뛰고 싶을 정도로 아프다.
그래서 다시 누워서 호흡을 해봤다.
그래도 처음엔 정좌로 하던 호흡 느낌이 이어져서 그런지 좀 되다가,
이내 갈피가 흐려진다.
아픔이 가셨기에 다시 또 정좌.
다시 팔딱팔딱 아파서 마친다.
계속하면 몸이 적응하던지, 내가 죽던지 결판이 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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